2011년 1월 6일 목요일

우리는 모두 자신이 알고있는 만큼의 세상밖에 보지 못한다.

세월이 흘러오면서 남는 것은,

나의 오감을 통해 전해들어오는 세상외부의 자극에 대한,

그 시기의 내 수준이 할 수 있는 만큼들의 반응과 그것이 축적된 그림이

곧 그 사람이 세상과 소통한 흔적이며 그것은 그의 사고방식, 가치관, 생각으로 그려진다.

마치 그 흔적은 저 깊은 동굴에 신비하게 자라나는 한방울 한방울이 모여 보이지 않게 자라나는 종유석과 같이 내 습관과 가치관으로 하여금 내 모습을 만든다.


그리고 그것은 그 모습처럼, 어릴적의 외부자극과 내 오감의 반응으로 생성된 독특하고 고유한 모습은 가장 아랫부분에 주춧돌 처럼 자라난다.

그리고 그 기반을 토대로 나의 생각과 습관과 행동과 사고가 자라난다.

어릴적 상처와 교육과 경험은 평생가도 지울 수 없고 바꿀수도 없고 나를 따라다니며 괴롭힌다.

어리광이 심한사람, 의심을 잘하는 사람, 마음을 쉽게 못여는 사람, 자신감에 차있는 사람,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등의 기본 특징이 결정되는 어린순간의 경험들..

그리고 그렇게 생선된 나의 삐뚤어진, 혹은 꽤 괜찮은 모습위로 나이를 먹고 차곡차곡 한방울씩 쌓이면서 점점 날카롭게, 섬세하게 쌓인다.

사춘기때의 반항하고 반항했던 모습은 한가운데 종유석이 옆으로 살짝 휘었다 올라간것 처럼, 저렇게 보이겠지. 삶의 어떤 흔적도 지울수 없다. 다만 그 위에 다시 견고히 올바로 좀더 섬세히 쌓는 것이지..


위에서 떨어지던 물방울이 멈추는, 외부와의 자극이 멈추는, 그것이 내 오감이 끊길때, 죽음이 찾아온다. 그리고 그의 삶은 완성된다. 그 종유석또한 모양이 완성된다. 그 전엔 완성이 아니다. 죽음은 삶을 완성으로 만들어 준다. 살아온 흔적. 완성하고나서야 보이는 내가 만들어온 나의 작품.


우리는 다들 어떤 작품을 만들고 있을까?


인간은 모두 예술가다.

자신의 오감으로 세상과 소통하며, 그것이 같은 세상을 살아도 전부 세상을 다르게 보는 이유.



자신의 오감은 자신이 경험하고 알고있는 수준에 맞게 세상을 편집하여 내게 보여준다.





진정한 삶의 예술가라면,

세상과 통하는 오감이란 통로를 아주아주 예민하게 훈련하여 세상의모든것을 잡아내어라.

그래서 더 풍부하게, 더 멋지고 완성된 작품을, 그 통로로 들어오는 모든 자극을 멋지게 배합하여 하나로 만들자. 그것은 어느누구도 대신 만져줄수 없다.

모두 자신의 오감을 통해서 뿐이 세상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우린 전부 개성이 있으며, 대신 해줄 수도 없고 혼자이기도하며 동지이기도 하다.


세상에는,

'나'와,

외부자극(세상)과,

그것을 잇는 '감각(자신만의 오감)'

이것이 전부다. 희노애락, 타인, 사건, 사고, 환경, 나를 제외한 그 모든 것은 전부 하나의 '외부자극'일 뿐이다.

심지어 우린 그것을 자신이 갖고있는 감각을 통해서만 볼 수 있다.

결국 나와 세상. 1:1의 삶이다. 남도 없고, 다른 사람도 없으며 전부 그것은 나를 자라게하는 외부자극일 뿐이다.

더 고급자극, 더 강렬하고 유익한 자극을 받아 훌륭히 자라고싶다면 감각을 훈련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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